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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1 [미국박사과정] 졸업을 향해서, 커미티 미팅 7

한달 만의 포스트 - 

스크롤 주의하세요! 구구절절 텍스트가 많아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향해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의 지도교수 이외에도 2-3명의 교수님을 모아 Committee meeting을 형성한다. 이 분들은 학생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다. 


예를 들어, 모든 교수님들이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 지도 교수님이 너무 바빠서 학생을 챙기지 않거나 학생의 프로젝트를 외면할 때

- 지도교수가 학생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해야할 잡다한 업무들을 시키거나 

- 지나치게 성과위주로 몰아가서 학생이 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하게 시킬때

- 학생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교수가 학생과의 소통을 거부할때

-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데 지도교수가 고집을 부리며 학생에게 산으로 가기를 강요할 때 등등..

지도교수-학생도 사람 사이의 관계인지라,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있는 만큼 다양한 성향의 교수님들이 있기 때문에 그 중에는 서로 극과 극이 만나서 불꽃 튀는 관계도 있고 서로 요철마냥 성격이 딱 들어맞아 죽이 잘맞아 졸업 후에도 친하게 지내는 관계도 있다. 


박사학위를 하면 4-5년간은 지도교수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지내게 되는데,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이 워낙 막강한지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학생이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커미티에 소속된 교수님들이다. 부당한 일이 있을 경우 제일 먼저 가서 말을 꺼내 상담하기 좋은 교수들이 커미티 멤버들이고, 내 프로젝트가 교수의 고집으로 인해 산으로 간다면 커미티 교수님들이 지도교수에게 교수 대 교수로서 방법이나 방향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 이 경우, 동료교수의 의견을, 더군다나 2-3명의 동료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을 맞닥뜨리면 지도교수도 접고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또, 커미티의 큰 순 기능으로는

지도교수와 학생이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제 3자로서, 과학자로서 심도깊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이다. 


나도 랩을 바꾸기 전부터 이런 커미티 미팅이 있었고, 원래의 G 지도교수님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뒤  A 지도교수님의 학생으로 바뀌게 된 뒤로는 커미티 미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새로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러이러한 것을 이러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보고 있다"라고 말을 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기 떄문에. 


긴 서두를 잘라먹고, 드디어 지난 4월 22일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된 후 첫 커미티 미팅을 하게 되었다.

새 랩에서 시작한지 5개월째 - 실질적으로 적응기와 등등을 빼자면 3.5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했던 것 치고는 흥미로운 실험결과들을 많이 뽑아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도 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커미티 미팅에 들어갔다. 


간식으로 커피와, 코스타리카에서 온 파인애플과 오스트리아에서 온 쿠키를 마련해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랑스럽게 나의 결과들을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교수님들의 표정이 영 흥겹지가 않다. 

전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떤 서브 실험에서 교수님들이 눈을 떼지를 못하고.. 


결국 일반적으로는 2시간 내에 쌈싸먹고도 남을 커미티 미팅인데 내 미팅은 3시간을 거의 채웠고 (우리 뒤에 회의실 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원래는 지도교수님과 커미티 미팅 후에 함께 맥주나 한 잔 하며 그간의 수고를 축하하기로 했었는데 

 미팅 끝나고 교수실에서 2시간 넘게 커미티미팅의 실패를 분석하고 코멘트를 들었다. 아 정말 멘붕. 


커미티 멤버 교수님들의 요지는 4학년에 새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빠르고 쉬운 프로젝트를 해야하지않겠냐, 라는 뉘앙스였는데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는 너무 광대한 꿈을 꾸는, 그러면서도 성공여부가 애매한 실험들이라 많은 우려를 받은 것.. 


지난 4개월간 주말에도 랩에 들어가며 바쁘고 바쁘게 달렸던 나로서는 맥이 좀 풀리더라. 

아니, 맥이 풀렸다기 보다는.. 

배우는 학생으로서 부족한 점이 있는게 당연하고, 발전할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너무 많은 지적을 한번에 받고 그 다음에 교수님과 2시간동안 커미티 미팅에서 우리가 부족했던 점을 듣고 있자니 머리와 마음에 과부하가 왔던 것 같다. 그래서 뇌가 정지된..? 그냥 멍한 느낌. 


(아이 키울 때 기억해야겠다. 혼나는거도 가끔 한 두개 혼나야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혼나면 왜 혼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다 싫은 마음만 올라온다!!) 


지도교수님이 퇴근을 해야해서 분석의 시간은 끝이 나고 (5시 반정도) 

나는 비틀비틀거리며 가방을 싸서 학교를 나오며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남편, 커몬.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맨하탄 다운타운에서 만나서, 

가본적 없던 고양이 카페에 무작정 찾아갔다. Manhattan 의 Little Lions.


이 곳은 가게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에 들어가서 먼저 음료/음식을 주문하고 고양이 카페 입장료($11/1hr)를 지불한다. 그리고나서 음료/음식을 받아 들고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 차를 시켜서 들어가니 푹신한 소파들이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그 푹신한 소파 위에서 세상 초탈한 편안한 자세로 늘어져 자고 있는 고양이. 


그 모습을 보니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게 느껴지더라. 

그래도 힘이 없어서 ㄱ자의 소파의 구석에서 추욱 늘어져 다른 사람들이 고양이들과 노는 것들을 멍하니 구경하며 간간히 남편에게 꿍얼꿍얼 거리며 한 시간을 보냈다. 



소파 뒤에 성이 있었다! 두마리 다 자고 있어서 미처 몰랐었음.. 성 탑의 아가 고양이가 구출을 기다리는 공주님 같아서 빵 터짐


동물 테라피가 괜히 있는게 아니더라.. 앞으로도 답답함이 차올라 어쩔 줄 모를때 한번씩 가야겠다. 고양이랑 놀지 않아도, 

그냥 이 생명들이 호기심있게 놀거나 평화롭게 자는 모습만 봐도 위로가 되더라. 


고양이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나온 뒤, 이제 정신을 조금씩 차리던 나는 이제 하소연 타임이 와서.. 

남편을 이끌고 야외 테라스가 있는 다이너에 무작정 앉아서 음식을 주문 (이때 밤 9시 정도 ㅋㅋ) 하였고..

내 하소연의 전조를 듣던 남편은 맥주를 주문한다... ㅋㅋ


그러나 남자친구 남편 등등과 생활해 본 분들은 아시듯이,

남자는 자꾸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경향이 있어서, 남편은 자꾸 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다음 번에는 ~하게 고칠 것을 권유하거나 내가 과학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해주려했다. 아 근데 그게 아니라고 이 남자야. 하소연하다가 고구마를 먹는 기분.



그 다음날, 맘이 아주 잘통하는 친구를 브런치로 만났다. 저 케익 기억나시죵? ㅎㅎ 

이 친구가 저 카페에 가보고 싶다 해서, 케익을 시켜놓고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웨이터가 고기를 좋아하면 이거 시키라더니.. 얇은 베이컨이 아니라 웬 훈제 삼겹살이 끼워져서 옴)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이 친구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고, 벤처를 할까 고민 중인 친구인데 나의 상황과 이야기하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새 프로젝트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것과 비슷하더라. 그래서 더더욱 내가 이해받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고마워 베이비. 

박사 학위하면서 숱하게 많이 드는 고민 - "나는 과연 충분히 해낼 수있을 것인가?" 


해도해도 끝이 없고

그냥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꾸준히 해서 되는거라면 할텐데 (뜨게질처럼)

이 학위 과정에서 나는 노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몸으로 때우는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머리의 한계도 정말 자주 느끼고. 근데 머리의 한계는 내가 노력한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커미티 중에 교수님들끼리 오갔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분명 그 말을 듣고 있었으면서도 그 이야기의 의미를 전혀 못알아 들었다. 나중에 지도교수님이 해석해줘서 알게 됨.. 

평소에 나는 교수님들도 나같은 사람이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정말 그때의 커미티 미팅에선, 

'와 과학적 사고의 레벨이 정말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하고 경외심이 들더라. 

그리고 과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도. 

이런 이야기를 알아먹어야 포닥을 할텐데.


이렇게 또 혼자 땅굴을 파며 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친구가 한마디 한다.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언니가 못알아 듣는 것은 당연한거고, 중견급인 커미티 교수님들이 언니의 high risk인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그래, 커미티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겠지. 




그러나 사람 맘이라는게 이해된다고 풀리는건 아니잖아요?

저녁에 답답함이 다시 올라와서 새우 듬뿍 넣은 고급라면을 한상 차려먹고..



그 다음 날에는 남편과 맨하탄 산책. 

햇살을 받으니 또 마음이 노곤노곤 따뜻따뜻해진다. 

마음이 힘들 때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 햇살의 온기, 생물들의 움직임 - 참 경이롭고 위로가 많이 된다.


날씨가 많이 풀리니 (뉴욕은 4월에도 눈이 왔다) 사람들이 센트럴 파크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연도 날리고 있었다. 

거짓말같이 수채화같은 하늘에 감탄하며 사진을 찰칵 찰칵. 


 남편이 요염하게 찍혔네..


정말 거짓말 같은 하늘!! 

합성한 것 같은 이 느낌 - 비록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공원 내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커미티의 후폭풍은.. 1주일이 지난 지금도 간간히 느끼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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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들레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