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랩으로 옮긴 후, 그 네번째 커미티 미팅을 오늘 했다. 

기간으로는 새 랩에 조인한지 2년에서 3일 뺀, 나름 기념비적인 시점. 


땡스 기빙 연휴 바로 뒤에 있었기에 연휴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포 사진 편집하고, 점이 몇개인지 세고, 그래프 만들며 보냈고

입덧으로 인해 먹으면 토하고 (토해서) 슬퍼하다가 또 먹으면 토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남편이 해준 밥을 고맙게 받아 먹고 또 토하고...

점심 도시락. 입덧이란 뭐가 먹힐지 알수없는 도박.


아랫배 생리통처럼 오는게 심해서 (자궁이 커져서 그렇다 한다) 생전 안먹던 타이레놀도 어제 한알 먹고. 


어제 드디어 피피티 흐름을 잡고 

오늘 아침, 발표하기 2시간 전에서야 사람들이 잘 안쓰는 현미경실에 처박혀서 속사포로 구두 연습을 시작.


구석에 처박혀서 중얼중얼 구두 연습중



물론 발표 전날 교수님이 "아 이 세포들도 후딱 IF해서 발표전에 슬쩍 함 봐봐!" 라고 한게 유머. 

발표 전에 미쳐돌아가는거 아시면서 ㅋㅋㅋㅋ 초인적인 효율성으로 아침에 12분만에 4가지 컨디션 현미경 스캔함 ㅋㅋㅋ


매 커미티 미팅때 마다 ' 이건 도저히... 소화하기에 불가능한 양이다... ' 라고 느끼며 

그냥 할 수 있는 만큼까지만 하자고 겸허하게 반쯤 포기한 태도로 발표를 임하게 되는데 

(이건 교수님이 피드백을 발표 직전에 몰아서 주고, 피드백도 엄청 묵직하게 줘서 발표 내용이 훅훅 바뀌는 것도 한 몫 한다)

헐떡헐떡 거리고 잠 못자서 죽을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하긴 하는구나. 


오늘도 무사히 마쳤다. 


교수님 4명을 앉혀놓구 장장 49장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설명하는데, 

설명하면서도 이게 지금 너무 중구난방으로 들리진 않을런지, 

내가 제대로 설명은 하고 있는건지, 핵심 지식을 빠뜨리진 않았는지,

교수님들이 흥미롭다고 느끼게 하고있는지 여러 의구심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미 나는 할만큼 했고, 다시 한다 해도 주어진 조건 내에서는 이 이상은 할 수 없기에... 

(대학원 2년차 분자유전학에서 C+을 받았을 적에도 아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난 재수강해도 이 이상 못받아...)


그저 준비한대로,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 발표. 


결과적으로는, 나도 놀라울 정도로 호평이었다. 


커미티 미팅이 시작하기 직전에, 그리고 발표 마친 후에 학생은 회의실에서 잠시 나가고 교수님들끼리 closed door discussion을 하는데, 이번에는 제일 연장자격인 교수님이 굳이 안나가도 될거 같다며 뻘쭘하게 나가려는 나를 잡았다. 

"성과가 아주 순탄하네, 이 정도면 9개월 있다가 만나도 되겠어"

 

커미티 미팅의 평가는 이 다음 미팅을 3개월, 6개월 또는 9개월 뒤에 할지로 갈리는데 - 

보통은 6개월이 주기적이고, 통상적으로 3개월은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경우 (=잘 안풀려서 집중적 관심이 필요한 경우), 9개월은 너무 순조로와 굳이 안건드려도 알아서 잘 하기에 집중하라고 시간을 주는 경우에 해당된다. 


허허 집중 관리 대상으로 찍혀서 3개월도 받아본 적 있는 나로서는 9개월을 받고나니... 네..? 


교수님들 진심이에요? 그래도 되겠어요? 두유 트러스트 미?? 




우리 교수님의 전폭적인 관리 아래 받은 좋은 평가라 교수님 덕이 제일 크다. 


그래도 이렇게 잘되고, 9개월 뒤에 보자고 하면 그 사이에 구름이 낳고, 6주에서 12주 출산휴가 받고나서 복귀하자마자 다음 커미티 미팅을 하면 된다는 것. 그럼 큰 공백 없이 복귀할 수 도 있다는 것. 


(출산휴가는 내국인 대학원생에게는 12주이지만 외국인 학생에게는 출산휴가 규정이 없다. 과 또는 담당교수의 재량. 그래서 아직 2주가 될지 6주가 될지 12주가 될지 알수가 없다.. 이에 대한 나의 감정폭발은 또 다른 때에 썰을 풀기로.)


출산휴가 떠나기 전에 주8일 일할 생각으로 일하고 매일 1-2시간씩 엑스트라로 일해야 한다는 교수님 말에 첨에는 욱하고 올라왔지만 

생각해보면 임신 말기 또는 아이 태어나고 정말 시간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미리미리 성과를 쟁여두라는 말씀이라 반박불가였다.

그런데 오늘 9개월 받고나니.. 이러다 진짜 잠깐 출휴 갔다가 바로 돌아와서 또 일할 것 같은 스멜이 폴폴...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해야하나, 좀 쉬고싶은데! 누군 1년 육아휴직도 받는데!' 라고 두시간 정도 억울해 했다. 

그러다 다시 돌이켜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일도 (특히 과학 쪽) 성과를 내려면 내 개인 시간을 쪼개어 일을 충당할 수 밖에 없는 거구나. 

이게 워킹맘이라면 - 아이를 우선시하며 키우고 또 일도 월급 받는만큼 해내려면 -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거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나마 대학원생이라 주중에 아이 챙겨야 하면 아이 챙기고 밤이나 주말에 와서 일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고,

아이 보며 일해야하면 교수님이 자기 오피스에 playpen 갖다놓구 애기 재우며 일해도 된다고 하셨으니, 

직장 환경도 최대한 내가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분위기다. 


한 생각 돌이키니 이게 억울할 일이 아니라, 내가 어차피 넘어야 할 고비를 주변의 지원과 관심을 받으며 넘을 기회더라.


단지 내가 넘어야 할 고비를 교수님이 먼저 지적해줘서 마치 교수님이 시키는 것 같은 착각이었을 뿐. 

(그리고 교수님 본인도 이렇게 헤쳐나가고 계시기에, 더 크게 와 닿는다. 육아와 교수직 양쪽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매일 매일 저글링하는게 곁에서 잘 보이기에..)





Posted by 민들레_ :

미국 땡스기빙이라 어제 하루 집에서 쉬었다.


쉬었다고 하고 싶으나... 커미티 미팅이 바로 다음주 화요일이라 어디 가지는 못하고, 집에서 맛난거 해먹었는데 영 먹을때 땡기질 않는다. 어제 밤에 피피티 만들려고 자리잡고 오후 6시부터 앉아있었는데 9시쯤 포기. 헛구역질이 자꾸 나고 그렇다고 헛구역질 가라앉힌다고 뭐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각.. 속이 비면 헛구역질이 나오고 뭘 먹으면 입에서 신맛이 가시질 않아서 둘중 덜 힘든걸로 골라야한다 ㅠㅠ 


뒤집어지는 속을 잡고 한 시간쯤 뒤척이다 겨우 잠든 후, 

새벽 4시에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눈뜨자마자 먹고 싶었던 스팸김치볶음밥을 해먹었는데.... 막상 또 해놓고나서 먹으려니 그저그렇다. (그러나 뒷처리가 아까우므로 꾸역꾸역 먹는 중). 현 시각 4시 40분.. 

원래는 이번주 목금토일 내내 쉬는 주말이지만 커미티 미팅이 코앞인 자에게 그런 사치는 없나니..!!! 오늘 (금) 학교 가서 교수님 만나기로 했으니 으쌰으쌰 슬라이드를 만들어보자. 

Posted by 민들레_ :


박사학위라는게 일반적으로 익숙한 1-2년 과정의 대학원과는 다른게, 

또는 4년 과정의 의과나 법과 대학원과도 다른게.. 

박사학위는 정해진 졸업이 없다. 성과에 따라 잘하면 빨리 졸업한다고 하지만 

실제론 그것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하면 발목 잡혀서 졸업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본인은 너무 잘했는데 운이 나빠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고,

본인은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교수와 상성이 안맞으면 또 헬게이트가 열린다. 


학위 기간이 미정인데다가 

"이정도면 졸업해라" 라고 결정하는 칼자루는 지도교수가 쥐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박사생과 지도교수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인거 같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애 보다는 증의 퍼센트가 높아진다...) 


내 박사과정은 연대기순으로 요약하자면, 

2012년에 석박사 통합과정인 대학원에 입학해서,

2013년에 A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정하고 연구조교로 일을 하다가

2015년에 A교수님이 아카데미아를 뒤로하고 회사에 취직하는 바람에, 

2015년 12월부터 B교수님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2017년 4월 현재, 5학년을 마치고 올 9월부터는 박사 6년차가 된다. 

박사 6년차라고는 해도 실제 지금 실험실에서 내 연구를 한 기간은 1년 4개월정도.. 


지금 B교수님은 4학년에 다시 맨땅부터 시작해야하는 내 상황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해주고 억울해 해주고 

A교수님이 내 펀딩(=내 월급)에 관한 말을 여러번 번복하면서 일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할때 

나서서 걱정하지말라고 본인이 다 해결한다고 안심시켜주고 그런 분이다. 


성격도 호탕해서 나랑 농담따먹기도 자주하고

신기한 간식 선물받으면 지나가면서 내 책상에 놓고 가주고 

내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때는 차분하게 그 상황에 대해서 브리핑도 해주며

"일단은 너도 관련된 일이니 너도 알아야한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이렇게 대처해서

네가 불이익을 안당하게 ##하자는 결론으로 이끌어나가겠다" 

이렇게 해주는, 아 쓰면서도 보니 정말 둘도 없을 배려넘치는 지도교수다. 


그런데 이것도 내가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지 ㅋㅋㅋㅋ 

아무리 내가 부처님 예수님과 일해도 내가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만성피로로 늘 미열과 충혈된 눈으로 살다가 보면


"열심히 해서 논문 하나 더 내야지, 그래야 너한테 좋다. 

그리고 이번에 결과 발표하면 과에서 너보구 1년안에 졸업하라고 할텐데

그거 1년 연장해서 7학년 꽉 채우고 졸업하면서 논문 하나 더 내는게

네 장래에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과에다가 너 1년 더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겠다"


이런 교수님의 말이 참 쓰게 다가올때가 있다


저 말이 틀린건 하나도 없는데

1년 더 실험하는게 논문으로 나오려면 논문까지 내가 다 써야하는데 

1년 안에 그건 비현실적인거 같고


나름 일주일에 50시간 정도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더 해야해 더, 더 열심히 해야해! 

대학원생은 일주일에 60시간정도 일하는게 적당한거 같애" 

이런 말씀을 하시는거도 맥빠질때가 있고


알고보니 우리 실험실의 4명의 박사생 중에서 

나에게만 이렇게 (애정어린?) 채찍질을 하는 걸 알았을 때  

'아 내게 거는 기대가 크구나, 이 기대에 보답해야겠다'가 아니라

' 아 진짜.. 쟤는 맨날 조퇴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가 먼저 떠오르는거다. ㅠㅠ


사실 전자의 반응은.. 나중에 내가 유명해져서 지도교수를 떠올리며 어디 인터뷰에서나 하는 말이지, 

진짜로 맘 속 첫 반응이 저런식이라면..

글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ㅋㅋㅋㅋ 


내일 모레 커미티 미팅*이 있어서 지난주에 80시간정도 일하고, 

주말내내 일하고, 이번주도 매일 아침에 눈뜨자마자부터 자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서 

데이터분석하고 현미경 사진 다듬고 피피티 만들고, 

오늘 지도교수님이랑 만나서 결과토론을 한바탕 했다. 

(*커미티 미팅: 박사생들이 무책임한 지도교수를 만나서 허송세월하거나 않도록, 

박사생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교수를 3-4명정도 정해서 

지도교수 외의 교수들에게 졸업 프로젝트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모임.

지도교수가 성격파탄이거나, 박사생을 방치하거나, 그릇된 방향으로 플젝을

자꾸 몰아가는 경우에 이 커미티의 교수들이 제재를 가할 수 있음)


어 그런데 결과 토론 후에,  

커미티 미팅 끝나는 목요일 오후부터 할 일과

그 담날인 금요일날 해야하는 일과

오는 주말 안에 이거이거 분석 좀 다 해야겠다며 일을 막 던지시는게 아닌가.  


아 교수님 나 죽겠소!

근데 또 보니 진짜 나한테만 그래!

왜 다른 애들은 커미티 끝나고 좀 쉬게 해주는데 

나한테 이렇게 빡시게!! 돌리는 것이오!!!!!!!!!! 

여름에 학생도 하나 맡으라 하고!!

조교도 하라하고!! 실험은 이 속도 그대로 가라고 하고!!


일을 많이 하는건 괜찮은데

이게 내가 동기부여가 되어서 일을 많이하는거랑

' 아 이거까지만 죽도록 달리고 한숨 돌려야지' 하는 찰나에

목구녕까지 차오르게 일을 주고 몇일 간격으로 재촉받으며

일을 많이 하는건.. 

내 멘탈의 상태가 너무 다르다 


그래, 잘 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근데 얼마나 열심히 해야돼?

최선을 다하라고?

최선을 다하는 거 좋다, 근데 내 삶이 망가지면서까지 최선을 다하는건

정말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인거. 

어디서부턴가는 나의 존엄성을 위해서 선을 그어야 하는거 같다. 


그리고 내가 초인적인 일정으로 일을 많이 하고 데이터를 많이 생산해내면

그게 어떤 괴로움을 동반해서 나오는 건지 남들은 알수가 없다. 

본인이 괴로웠던게 아니니 옆에서 보기엔 결과가 운이 좋아 쉽게 쉽게 나오는 걸로 보이고

쉽게 쉽게 나오는 거 같아보이니

쉽게 쉽게 요구하는거 같다.. 


실험에 들이는 시간/노력과 연구의 진도는 얼추 비례하며 증가하다가 

결국 어느 정도를 넘어서는 비범한 연구의 생산성은, 

내 속을 갉아먹고 내 삶을 희생하는 댓가로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받는거...


학교 내에서는 숭고한 과학을 위해서는 그럴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존재하는데

그 분위기는 고용주(학교/지도교수)들에게 용이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압박 속에서 "더, 더, 더"를 요구받다가 그게 내재화되어서

스스로 그렇게 삶을 희생하며 살아야만 과학자가 될 수있다고 뿌리깊게 믿기 시작하는 거같다. 


휴식도 없고, 나를 위한 시간도, 사회적 관계를 위한 시간도 여유도 부족하여

점점 더 "일이라도 더 하자"로 이어지는 악순환. 


이 악순환에 끌려들어가는 사람들을 계속 봐오고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각오하면서 대학원을 들어왔는데도 

나 또한 교수님의 요구를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심리적 압박에 못이겨 

악마와의 거래에 손을 대려는걸 보고 식겁했다. 


교수님은 교수님의 입장에서 일을 많이 줘도 해내는 학생이면,

당연히 더 일을 주고싶고 계속 이렇게 일을 하기를 기대하겠지.


그래도 무리인건 무리야. 교수님 저도 좀 살아야겠어요. 

주말에 하루는 쉬어야겠어요. 어차피 내가 힘든건 온전히 내 몫이잖아! ㅠㅠ 



Posted by 민들레_ :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나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진리(이 경우에는 음악적 경지)를 연구하고 그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기위해 계속 노력하는 삶.

과거, 짧은 몇주간의 기간이었지만 이전과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던 때가 있었다.
같은 일상일지언정 전혀 다른 삶이었지.

진리를 추구하는 동력이 일상화가 되면 계속 그 '다른 세상'에 머물러 있게 되는걸까?

변화하고픈 내가 있는데 동시에 변화하기위한 행동에는 한없이 게으른 나도 있다.

결론으로 오늘 저녁은 맥주 두병에 후렌치후라이.
Posted by 민들레_ :

우리 학과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Student Seminar을 한다. 

금요일 점심시간에 이루어지는 이 학생세미나는 과에서 주도하고 학생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 자리이다. 

학생들이 발표를 하는 기회를 자주 가지면서, 피드백을 받아 발표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리. 


학생들이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이면서 (출석체크를 한다!)

과에서는 학생들의 참석률을 돕기 위해 점심을 주문해주곤 했다. 


4년 전, 처음 1학년으로서 이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에는 

다양한 메뉴 중에 고급음식인 스시가 종종 주문되어 있기도 했고,

2, 3학년 때에는 스시가 빠진 중국음식/샌드위치/화덕구이피자/미국피자 중의 옵션 중에서 오더니

4학년 후반이 되자 메뉴가 샌드위치로 고정이 되었고.. 

지난 주.. "점심 주문을 중지하겠다" 라는 과의 이메일이 왔다.


우리 세미나(12시 시작)의 전 시간대(10시-12시)에, 같은 세미나실에서 수업이 있는데

우리 세미나의 사람들이 그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었다는 신고가 있었다고. 


대체 누가 그런 무개념한 행동을 했나!!! 하며 슬퍼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전 시간대의 학생 하나가 뒤에 세팅이 되는 샌드위치들을 보더니 세미나 하러 온 아이들에게 "나도 이거 먹어도 돼?" 라고 물었다가... 세미나 학생들이 "아니 이거 세미나 하는 사람들 먹으라고 준비된거야" 라는 대답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본인들의 수업시간에 늘 방해가 되었다며, 과에 강력히 항의 하겠다고.


상황을 정리하고 보니 음식을 배달해주는 분이 

전 수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회의실 뒷문을 열고 들어가서 음식을 세팅하고 나왔던 것이고,

그 것 때문에 수업을 하던 사람들은 방해를 받았던 것. 


세미나를 하던 우리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채 점심을 빼앗기고 말았다 ㅠㅠ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되자, 안그래도 음식의 종류가 점점 박해지던 상황에 불만이 있었던 학생들은, 

'차라리 잘됐다!!! 됐다그래!! 내가 내일 체코 디저트 갖고올게, 그거 같이 먹자!!" 라는 동기의 이메일을 시작으로 

"나는 라따뚜이 만들어올게 / 나는 스패니시 오믈렛 만들어 올게 / 나는 음료수 가져올게 / 나는 와인 가져올게..." 등등의 이메일들을 꼬리에 꼬리를 이어 돌리기 시작했다. 


팟럭 파티 분위기가 되어 나도 들떠서 마늘빵을 구웠다. 


버터, 올리브유, 생파슬리, 잘게 자른 페퍼로니와 섞은, 오븐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Garlic knot

그러나 빵 반죽을 만드려는데 하얀 밀가루가 떨어져서 통밀가루를 섞었더니 

빵이 부풀질 않아 딱딱해졌다는 ㅠㅠㅠ 슬픔...

학생들이 가져온 각종 음료와 주류.

주스파, 와인파, 맥주파, 탄산음료파가 다양하게 골라 잡을 수 있는 드링크바~

세미나실에서, 음식을 가져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학생들

오른쪽의 책장 뒤에 뒷문이 있는데, 문 밖으로까지 줄을 서있다. 

음식이 동나기 전에 한장 찍으려 했는데....

너무 순식간에 음식들이 사라져서 찍을 새가 없었다.. 


기억나는 것만 적어보자면: 

닭 구이, 닭튀김, 라따뚜이, 체코의 디저트빵, 두툼하고 감자가 들었던 스패니시 오믈렛,

4가지 맛의 감자칩, 쿠스쿠스 샐러드, 퀴노아 샐러드, 두가지 컵케익, 6종류의 쿠키..


심하게 영양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는 나의 음식 선택 ㅋㅋ


이 모든 음식들이 자발적으로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되는 일부의 학생들이 준비해온 것이었는데,

학기의 마지막 세미나인 다음 주에 

이번 주에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또 다시 팟럭을 준비해온다고 한다. 



ㅎㅎ 과에서 생긴 오해로 인해 무료 점심이 없어졌지만, 

이 상황에서 슬픔을 승화시켜서 

즐겁고도 다채로운 메뉴를 가능케 한 우리 과 학생들~


유쾌한 결속력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었다 :) 

다음주도 기대하겠어! 

Posted by 민들레_ :

한달 만의 포스트 - 

스크롤 주의하세요! 구구절절 텍스트가 많아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향해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의 지도교수 이외에도 2-3명의 교수님을 모아 Committee meeting을 형성한다. 이 분들은 학생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다. 


예를 들어, 모든 교수님들이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 지도 교수님이 너무 바빠서 학생을 챙기지 않거나 학생의 프로젝트를 외면할 때

- 지도교수가 학생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해야할 잡다한 업무들을 시키거나 

- 지나치게 성과위주로 몰아가서 학생이 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하게 시킬때

- 학생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교수가 학생과의 소통을 거부할때

-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데 지도교수가 고집을 부리며 학생에게 산으로 가기를 강요할 때 등등..

지도교수-학생도 사람 사이의 관계인지라,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있는 만큼 다양한 성향의 교수님들이 있기 때문에 그 중에는 서로 극과 극이 만나서 불꽃 튀는 관계도 있고 서로 요철마냥 성격이 딱 들어맞아 죽이 잘맞아 졸업 후에도 친하게 지내는 관계도 있다. 


박사학위를 하면 4-5년간은 지도교수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지내게 되는데,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이 워낙 막강한지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학생이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커미티에 소속된 교수님들이다. 부당한 일이 있을 경우 제일 먼저 가서 말을 꺼내 상담하기 좋은 교수들이 커미티 멤버들이고, 내 프로젝트가 교수의 고집으로 인해 산으로 간다면 커미티 교수님들이 지도교수에게 교수 대 교수로서 방법이나 방향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 이 경우, 동료교수의 의견을, 더군다나 2-3명의 동료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을 맞닥뜨리면 지도교수도 접고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또, 커미티의 큰 순 기능으로는

지도교수와 학생이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제 3자로서, 과학자로서 심도깊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이다. 


나도 랩을 바꾸기 전부터 이런 커미티 미팅이 있었고, 원래의 G 지도교수님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뒤  A 지도교수님의 학생으로 바뀌게 된 뒤로는 커미티 미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새로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러이러한 것을 이러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보고 있다"라고 말을 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기 떄문에. 


긴 서두를 잘라먹고, 드디어 지난 4월 22일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된 후 첫 커미티 미팅을 하게 되었다.

새 랩에서 시작한지 5개월째 - 실질적으로 적응기와 등등을 빼자면 3.5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했던 것 치고는 흥미로운 실험결과들을 많이 뽑아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도 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커미티 미팅에 들어갔다. 


간식으로 커피와, 코스타리카에서 온 파인애플과 오스트리아에서 온 쿠키를 마련해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랑스럽게 나의 결과들을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교수님들의 표정이 영 흥겹지가 않다. 

전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떤 서브 실험에서 교수님들이 눈을 떼지를 못하고.. 


결국 일반적으로는 2시간 내에 쌈싸먹고도 남을 커미티 미팅인데 내 미팅은 3시간을 거의 채웠고 (우리 뒤에 회의실 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원래는 지도교수님과 커미티 미팅 후에 함께 맥주나 한 잔 하며 그간의 수고를 축하하기로 했었는데 

 미팅 끝나고 교수실에서 2시간 넘게 커미티미팅의 실패를 분석하고 코멘트를 들었다. 아 정말 멘붕. 


커미티 멤버 교수님들의 요지는 4학년에 새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빠르고 쉬운 프로젝트를 해야하지않겠냐, 라는 뉘앙스였는데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는 너무 광대한 꿈을 꾸는, 그러면서도 성공여부가 애매한 실험들이라 많은 우려를 받은 것.. 


지난 4개월간 주말에도 랩에 들어가며 바쁘고 바쁘게 달렸던 나로서는 맥이 좀 풀리더라. 

아니, 맥이 풀렸다기 보다는.. 

배우는 학생으로서 부족한 점이 있는게 당연하고, 발전할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너무 많은 지적을 한번에 받고 그 다음에 교수님과 2시간동안 커미티 미팅에서 우리가 부족했던 점을 듣고 있자니 머리와 마음에 과부하가 왔던 것 같다. 그래서 뇌가 정지된..? 그냥 멍한 느낌. 


(아이 키울 때 기억해야겠다. 혼나는거도 가끔 한 두개 혼나야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혼나면 왜 혼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다 싫은 마음만 올라온다!!) 


지도교수님이 퇴근을 해야해서 분석의 시간은 끝이 나고 (5시 반정도) 

나는 비틀비틀거리며 가방을 싸서 학교를 나오며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남편, 커몬.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맨하탄 다운타운에서 만나서, 

가본적 없던 고양이 카페에 무작정 찾아갔다. Manhattan 의 Little Lions.


이 곳은 가게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에 들어가서 먼저 음료/음식을 주문하고 고양이 카페 입장료($11/1hr)를 지불한다. 그리고나서 음료/음식을 받아 들고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 차를 시켜서 들어가니 푹신한 소파들이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그 푹신한 소파 위에서 세상 초탈한 편안한 자세로 늘어져 자고 있는 고양이. 


그 모습을 보니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게 느껴지더라. 

그래도 힘이 없어서 ㄱ자의 소파의 구석에서 추욱 늘어져 다른 사람들이 고양이들과 노는 것들을 멍하니 구경하며 간간히 남편에게 꿍얼꿍얼 거리며 한 시간을 보냈다. 



소파 뒤에 성이 있었다! 두마리 다 자고 있어서 미처 몰랐었음.. 성 탑의 아가 고양이가 구출을 기다리는 공주님 같아서 빵 터짐


동물 테라피가 괜히 있는게 아니더라.. 앞으로도 답답함이 차올라 어쩔 줄 모를때 한번씩 가야겠다. 고양이랑 놀지 않아도, 

그냥 이 생명들이 호기심있게 놀거나 평화롭게 자는 모습만 봐도 위로가 되더라. 


고양이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나온 뒤, 이제 정신을 조금씩 차리던 나는 이제 하소연 타임이 와서.. 

남편을 이끌고 야외 테라스가 있는 다이너에 무작정 앉아서 음식을 주문 (이때 밤 9시 정도 ㅋㅋ) 하였고..

내 하소연의 전조를 듣던 남편은 맥주를 주문한다... ㅋㅋ


그러나 남자친구 남편 등등과 생활해 본 분들은 아시듯이,

남자는 자꾸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경향이 있어서, 남편은 자꾸 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다음 번에는 ~하게 고칠 것을 권유하거나 내가 과학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해주려했다. 아 근데 그게 아니라고 이 남자야. 하소연하다가 고구마를 먹는 기분.



그 다음날, 맘이 아주 잘통하는 친구를 브런치로 만났다. 저 케익 기억나시죵? ㅎㅎ 

이 친구가 저 카페에 가보고 싶다 해서, 케익을 시켜놓고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웨이터가 고기를 좋아하면 이거 시키라더니.. 얇은 베이컨이 아니라 웬 훈제 삼겹살이 끼워져서 옴)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이 친구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고, 벤처를 할까 고민 중인 친구인데 나의 상황과 이야기하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새 프로젝트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것과 비슷하더라. 그래서 더더욱 내가 이해받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고마워 베이비. 

박사 학위하면서 숱하게 많이 드는 고민 - "나는 과연 충분히 해낼 수있을 것인가?" 


해도해도 끝이 없고

그냥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꾸준히 해서 되는거라면 할텐데 (뜨게질처럼)

이 학위 과정에서 나는 노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몸으로 때우는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머리의 한계도 정말 자주 느끼고. 근데 머리의 한계는 내가 노력한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커미티 중에 교수님들끼리 오갔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분명 그 말을 듣고 있었으면서도 그 이야기의 의미를 전혀 못알아 들었다. 나중에 지도교수님이 해석해줘서 알게 됨.. 

평소에 나는 교수님들도 나같은 사람이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정말 그때의 커미티 미팅에선, 

'와 과학적 사고의 레벨이 정말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하고 경외심이 들더라. 

그리고 과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도. 

이런 이야기를 알아먹어야 포닥을 할텐데.


이렇게 또 혼자 땅굴을 파며 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친구가 한마디 한다.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언니가 못알아 듣는 것은 당연한거고, 중견급인 커미티 교수님들이 언니의 high risk인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그래, 커미티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겠지. 




그러나 사람 맘이라는게 이해된다고 풀리는건 아니잖아요?

저녁에 답답함이 다시 올라와서 새우 듬뿍 넣은 고급라면을 한상 차려먹고..



그 다음 날에는 남편과 맨하탄 산책. 

햇살을 받으니 또 마음이 노곤노곤 따뜻따뜻해진다. 

마음이 힘들 때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 햇살의 온기, 생물들의 움직임 - 참 경이롭고 위로가 많이 된다.


날씨가 많이 풀리니 (뉴욕은 4월에도 눈이 왔다) 사람들이 센트럴 파크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연도 날리고 있었다. 

거짓말같이 수채화같은 하늘에 감탄하며 사진을 찰칵 찰칵. 


 남편이 요염하게 찍혔네..


정말 거짓말 같은 하늘!! 

합성한 것 같은 이 느낌 - 비록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공원 내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커미티의 후폭풍은.. 1주일이 지난 지금도 간간히 느끼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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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들레_ :
새 실험실로 옮긴후에 적응하느라 동분서주, 물품 어딨는지 몰라서 헤매고 시스템을 몰라서 어리버리하다보니 어느새 한달 반이 지났다. 한달 반 동안 해놓은 것은 없어 보이는데.. 6주나 지나가다니.

실험 밀도를 빡빡하게 올려서 돌리다가 어제 샘플 11개 결과확인을 했는데 하나도 제대로 나온 것이 없었다.

왜지?

몇년간 해온 실험이고 설령 환경이 바뀌었더라도 안될 아유는 없었는데.. 혹시나해서 마지막 결과를 다시 점검해보려고 준비하고있기는 한데, 자신감이 수습이 안된다. 기분전환하려고 웹툰을 읽어도 '웹툰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잘 쓰는 재능이 있네.. 나는 잘하는게 뭐가 있지?' 이런 생각이 자꾸 올라온다.

건망증도 있어서 열쇠고 핸드폰이고 가방이고 깜빡하고 (종종 진짜 미친다) 암기력도 당근 안되고, 실험은 왜 자꾸 뭐가 하나씩 어긋나는건지~!!!

많이 실험하고싶어 서두르다보면 실수가 늘어나고, 그러면 실험 전체를 못믿게 되고.. 근데 진도는 안나가고~
우리 전공학술지에 다다른 벽에서 아무것도 되지않는 박사생을 위한 칼럼이 있는거 보면 비단 나만 이런 기분 느끼는건 아닌 것 같은데.. 거 참 막막한 심정이다. 이럴때 주변의 누군가가 승승장구하는거보면 - 모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걸 알면서도 - 얄미워하는 못된 마음이 날것 같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행동이 말처럼 쉽지는 않구나.
Posted by 민들레_ :

11월 초, 


나의 지도교수님은 매주 함께하는 랩 미팅을 마치며 "8주 뒤에 학교를 그만두고 떠난다" 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실험실 사람들 전원 나라 잃은 표정. 


이공계에서 지도 교수가 떠난다는 것은 박사과정 학생들, 그리고 박사후 연구원(포닥)들이 오갈 곳 없이 붕 뜨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몇년간 연구를 한 성과는 논문으로 판가름이 나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논문이 없다면 3~5년 연구했던 시간은 그저 버린 시간 아니냐고도 한다) 논문이 나오려면 아무리 빡시게 해도 3년, 대학원생이 제1저자나 공동저자로 논문을 내려면 보통 4~5년 걸린다. 논문을 향해 달려가던 대학원생들과 포닥들 입장에서는 결실이 나오기 전에 중간에 교수님이 증발해버리면 그 결실이 흐지부지 말라 비틀어져버릴 가능성이 급격히 치솟게 된다. 


이제 4년차이며 1-2년안에 논문이 나올법한 상황이었던 내 경우는 중간에 애매하게 된 케이스가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나서 보니 의외로 학교를 떠나는 교수님들이 빈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눈치도 많이 늘고 (과학 실험도 순간순간의 감이 중요한 것 같다..?) 손기술도 늘었더라. 새 지도교수님과 새로운 팀 속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원래 교수님의 발표가 있던 그 날부터 바로 새로운 지도교수님을 찾아 물색 - ! 

일주일간 3번, 총 6~7시간 정도의 면담을 거치고나서 다가온 Thanksgiving연휴에 묻어가며 쿨타임을 가진 후에 오늘 비로소 새로운 실험실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실험실 인원 보충으로 인해.. 이미 포화상태였던 실험실에 자리가 없었던 관계로 교수님이 같은 층의 빈 사무공간을 쓸 수 있도록 해주셨다. 복도에 덩그라니 놓여져있던 책상에서도 지내봤고 책상이 없이 노트북으로 메뚜기 생활도 해봤으니 두려울 것 없이 오늘 사무공간에 들어갔는데..



너무 크다


교수님 방보다도 더 크다 ㅋㅋㅋㅋㅋㅋ 어떤 다른 교수님이 쓰던 오피스였다는데... 이걸 나혼자 쓰라구?

한가운데 덩그라니 있던 쓰레기통을 구석으로 밀어넣고 왕이 된 기분으로 셋팅해놓고 퇴근! 

오며가며 아는 사람들에게 내 오피스에 공간 많으니 커피마시러 놀러오라고 동네방네 이야기해 두었다.  


전전긍긍하며 박사 프로젝트 다시 시작하는 비루했던 대학원생이 어찌저찌 스리슬쩍 덕 보았던 오늘의 하루. 금요일날 팀발표 있는데 화요일 밤인 오늘도 시작 안했다는 슬픈 소식도 전해드린다..  

Posted by 민들레_ :

박사학위 4년 차에 들어서고 보니 학교의 일상들이 다르게 보인다. 졸업을 생각해야하고, 졸업 후 취직을 생각해야하고, 결혼하고 보니 지금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가서 살지, 취직은 둘다 하는지 또는 하나만 하는지, 나이가 들고 나면 어디에 정착할 생각인지 등등 어른의 고민들이 가득하다. 


실은 그 무엇도 ~해야한다는 룰은 없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는 뭉근하게 두려움이 올라와서 자꾸 여러가지 생각과 걱정을 일으킨다. 


막연하게 글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 기왕이면 나의 전공을 살려서 -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제 커리어 워크숍을 갔다. 커리어 워크숍 마지막 즈음에 그래프를 보여주는데, 그래프에는 생각하는, 수동적(좌) 와 행동하는, 능동적 (우) 가 있었다. 


그래도 나름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능동적이라고 여겼거늘, 수동성의 극좌에 해당한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이런 진로에 대해 글로 읽고 상상만 했지 직접 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떤 것을 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었구나.


10월 20일, 11월 5일 각각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글쓰는 사람들 미팅에 등록하였다. 친구도 없고, 홀홀 단신으로 참여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소심한 마음이 저변에서 쭈뼛거린다. 


요즘들어 스스로에게 계속 의문점이 있었다. 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쭈뼛거리는지? 한국사람들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화를 풀어나가는 편인데 학교에서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영어의 문제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전 직장에서 내가 너무나 엄청난 사교력을 펼쳤기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째서 이전에 (전 직장), 그리고 지금 (한국 사람들) 사람들과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나는데 학교에서는 그게 안되는 것인지? 실제로 학교에서 알게되어 학교 밖에서 만난 사람이 1-2명에 그치는데 (한인 제외), 조금 놀랍다, 이 학교에서 이제 4년차를 찍고 있는데 말이지. 


전공 분야에 관련되면 내가 쭈뼛거리는 건 아닌지 싶어 10/20, 11/5의 미팅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진다. 내 전공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가? 그냥 나이들어서 편안한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싶고 새로운 사람은 굳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이 된 것일까? Comfort zone에서만 안락하게 지내고 싶은가?


내 자신은 무궁무진한 연구 대상이자 실험 대상인 것 같다. 

나의 마음과 나의 몸 둘 다. 

(일례로, 어제 저녁, 내 몸은 2인분의 식사와 감자칩을 먹으면 말로 못할 심한 복통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해 내었다... 나름 발견 맞지..?)

Posted by 민들레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