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랩으로 옮긴 후, 그 네번째 커미티 미팅을 오늘 했다. 

기간으로는 새 랩에 조인한지 2년에서 3일 뺀, 나름 기념비적인 시점. 


땡스 기빙 연휴 바로 뒤에 있었기에 연휴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포 사진 편집하고, 점이 몇개인지 세고, 그래프 만들며 보냈고

입덧으로 인해 먹으면 토하고 (토해서) 슬퍼하다가 또 먹으면 토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남편이 해준 밥을 고맙게 받아 먹고 또 토하고...

점심 도시락. 입덧이란 뭐가 먹힐지 알수없는 도박.


아랫배 생리통처럼 오는게 심해서 (자궁이 커져서 그렇다 한다) 생전 안먹던 타이레놀도 어제 한알 먹고. 


어제 드디어 피피티 흐름을 잡고 

오늘 아침, 발표하기 2시간 전에서야 사람들이 잘 안쓰는 현미경실에 처박혀서 속사포로 구두 연습을 시작.


구석에 처박혀서 중얼중얼 구두 연습중



물론 발표 전날 교수님이 "아 이 세포들도 후딱 IF해서 발표전에 슬쩍 함 봐봐!" 라고 한게 유머. 

발표 전에 미쳐돌아가는거 아시면서 ㅋㅋㅋㅋ 초인적인 효율성으로 아침에 12분만에 4가지 컨디션 현미경 스캔함 ㅋㅋㅋ


매 커미티 미팅때 마다 ' 이건 도저히... 소화하기에 불가능한 양이다... ' 라고 느끼며 

그냥 할 수 있는 만큼까지만 하자고 겸허하게 반쯤 포기한 태도로 발표를 임하게 되는데 

(이건 교수님이 피드백을 발표 직전에 몰아서 주고, 피드백도 엄청 묵직하게 줘서 발표 내용이 훅훅 바뀌는 것도 한 몫 한다)

헐떡헐떡 거리고 잠 못자서 죽을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하긴 하는구나. 


오늘도 무사히 마쳤다. 


교수님 4명을 앉혀놓구 장장 49장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설명하는데, 

설명하면서도 이게 지금 너무 중구난방으로 들리진 않을런지, 

내가 제대로 설명은 하고 있는건지, 핵심 지식을 빠뜨리진 않았는지,

교수님들이 흥미롭다고 느끼게 하고있는지 여러 의구심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미 나는 할만큼 했고, 다시 한다 해도 주어진 조건 내에서는 이 이상은 할 수 없기에... 

(대학원 2년차 분자유전학에서 C+을 받았을 적에도 아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난 재수강해도 이 이상 못받아...)


그저 준비한대로,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 발표. 


결과적으로는, 나도 놀라울 정도로 호평이었다. 


커미티 미팅이 시작하기 직전에, 그리고 발표 마친 후에 학생은 회의실에서 잠시 나가고 교수님들끼리 closed door discussion을 하는데, 이번에는 제일 연장자격인 교수님이 굳이 안나가도 될거 같다며 뻘쭘하게 나가려는 나를 잡았다. 

"성과가 아주 순탄하네, 이 정도면 9개월 있다가 만나도 되겠어"

 

커미티 미팅의 평가는 이 다음 미팅을 3개월, 6개월 또는 9개월 뒤에 할지로 갈리는데 - 

보통은 6개월이 주기적이고, 통상적으로 3개월은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경우 (=잘 안풀려서 집중적 관심이 필요한 경우), 9개월은 너무 순조로와 굳이 안건드려도 알아서 잘 하기에 집중하라고 시간을 주는 경우에 해당된다. 


허허 집중 관리 대상으로 찍혀서 3개월도 받아본 적 있는 나로서는 9개월을 받고나니... 네..? 


교수님들 진심이에요? 그래도 되겠어요? 두유 트러스트 미?? 




우리 교수님의 전폭적인 관리 아래 받은 좋은 평가라 교수님 덕이 제일 크다. 


그래도 이렇게 잘되고, 9개월 뒤에 보자고 하면 그 사이에 구름이 낳고, 6주에서 12주 출산휴가 받고나서 복귀하자마자 다음 커미티 미팅을 하면 된다는 것. 그럼 큰 공백 없이 복귀할 수 도 있다는 것. 


(출산휴가는 내국인 대학원생에게는 12주이지만 외국인 학생에게는 출산휴가 규정이 없다. 과 또는 담당교수의 재량. 그래서 아직 2주가 될지 6주가 될지 12주가 될지 알수가 없다.. 이에 대한 나의 감정폭발은 또 다른 때에 썰을 풀기로.)


출산휴가 떠나기 전에 주8일 일할 생각으로 일하고 매일 1-2시간씩 엑스트라로 일해야 한다는 교수님 말에 첨에는 욱하고 올라왔지만 

생각해보면 임신 말기 또는 아이 태어나고 정말 시간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미리미리 성과를 쟁여두라는 말씀이라 반박불가였다.

그런데 오늘 9개월 받고나니.. 이러다 진짜 잠깐 출휴 갔다가 바로 돌아와서 또 일할 것 같은 스멜이 폴폴...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해야하나, 좀 쉬고싶은데! 누군 1년 육아휴직도 받는데!' 라고 두시간 정도 억울해 했다. 

그러다 다시 돌이켜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일도 (특히 과학 쪽) 성과를 내려면 내 개인 시간을 쪼개어 일을 충당할 수 밖에 없는 거구나. 

이게 워킹맘이라면 - 아이를 우선시하며 키우고 또 일도 월급 받는만큼 해내려면 -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거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나마 대학원생이라 주중에 아이 챙겨야 하면 아이 챙기고 밤이나 주말에 와서 일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고,

아이 보며 일해야하면 교수님이 자기 오피스에 playpen 갖다놓구 애기 재우며 일해도 된다고 하셨으니, 

직장 환경도 최대한 내가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분위기다. 


한 생각 돌이키니 이게 억울할 일이 아니라, 내가 어차피 넘어야 할 고비를 주변의 지원과 관심을 받으며 넘을 기회더라.


단지 내가 넘어야 할 고비를 교수님이 먼저 지적해줘서 마치 교수님이 시키는 것 같은 착각이었을 뿐. 

(그리고 교수님 본인도 이렇게 헤쳐나가고 계시기에, 더 크게 와 닿는다. 육아와 교수직 양쪽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매일 매일 저글링하는게 곁에서 잘 보이기에..)





Posted by 민들레_ :